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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사 연혁은 다음 관련 문헌에서 발췌한 것이다.

1. 기림사중창기(祇林寺重創記)

2. 신라함월산기림사사적(新羅含月山祇林寺事蹟)

3. 개간기림사사적(改刊祇林寺事蹟)

4. 현판기(懸板記)

5. 상량문(上梁文)

6. 발원문(發願文)

광유성인(光有聖人)이 창건(創建). 절 이름을 임정사(林井寺)라 하였다.

광유성인은 인도 스님으로 우리나라에 불교를 최초로 전한 스님일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관련된 설화는 세종대왕이 지었다는 「월인천강지곡」의 내용과 같다.

643년
(선덕여왕12년)

원효(元曉)스님이 중창하고 기림사로 개칭하였다.

682년

신문왕이 감포 앞바다에서 동해의 용왕으로부터 만파식적과 옥대를 선물로 받아 궁으로 귀환하는 도중 기림사 서쪽에서 점심을 먹었던 기록과 용연폭포에서 용을 날려 보낸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온다.

1258년
(고종 45년)

주지 각유(覺猷) 대선사에 관한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온다.

1424년
(세종 6년)

교종과 선종 각 18개 사(寺)를 정하여 불교 사원을 통폐합 할 때 기림사는 선종사찰로서 경상도 4개사원(기림사, 해인사, 진주 단속사, 거창 견암사)에 포함되었는데 이때 토지가 130결 이었다는 기록이「세종실록 지리지」에 나온다.

1501년
(연산군 7년)

지조건칠보살좌상(紙造乾漆菩薩坐像, 보물 415호)이 조성되다.

1598년

(선조25년∼ 선조31년)

임진왜란 당시 기림사는 지리적으로 전략요충지로서 경주 지역 승병과 의병 활동의 중심사찰이었다.

1684년

17세기의 기림사 중창불사에 관한 기록을「기림사 중창기」에서 살펴보면 아래 표와 같다.

건물이름

공사내용

담당스님

1649년

영산전(靈山殿)

3중창(三重創),개와

법열(法悅), 징열(澄悅)

1652년

금당(金堂)

3중창

혜식(惠湜), 경순(敬淳)

1653년

사리각(舍利閣)

3중창

영익(靈益)

1654년

약사전(藥師殿)

3중창,개와

탄휘(坦輝), 계윤(戒允)

1668년

대웅전(大雄殿)

개와

승호(勝湖)

1668년

금당(金堂)

아미타 삼존불 봉안

쌍성(雙聖)

1679년

대웅전

개와

영열(靈悅), 축홍(竺弘)

1684년

구항루

중창

나반(懶泮)

기림사 대적광전 수리 현황을 1997년에 해체수리 공사 중 종도리에서 나온 상량문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629년

제 5차중수(重修)
崇禎二年 歲次己巳 十月 日 大雄殿 改重建上樑 爲錄記.........

1755년

개조중수
乾隆二十年 乙亥 仲秋 初六日 ...... 大雄殿 改造重修

1785년

제 6중창
乾隆五十年 乙巳五月 二十六日 巳時 上樑而第六重創

1978년

제 7중수
西紀 1978年 戊午十日月二十七日 第七重修

 

1705년

기림사중창기(祇林寺重創記) 혜총(慧聰)스님이 찬술하다

1718년

신라함월산기림사사적(新羅含月山祇林寺事蹟) 불혜(不慧)스님이 찬술하다.

대적광전, 약사전, 오백나한전, 3층전(정광여래사리각), 무량수전, 진남루 등이 기록되어 있다.

1718년 비로자나 후불탱화 3폭 조성하다

1719년

 비로불 개금불사(蓋金佛事)를 하다. 증사(證師)는 학성(鶴城), 도인(道人), 도겸(道謙) 스님이다.「비로불중수개금화사시주발원문」

1729년 오백나한상을 옥돌로 조성 봉안하다.「오백나한조성발원문」

1740년

대적광전에 소조삼세여래상(塑造三世如來像)을 봉안하였으며, 이때의 증사(證師)는 은점산인(恩霑山人)이었다.「기림사 사적」

1785∼

1786년

대규모의 중창불사가 있었다.「영좌경주동령함월산기림사대적광전약사전오백성중전명부전종각중창시주방연록」이라는 현판기에 따르면 경주부윤 김광묵 700금, 공덕주 설초 스님 화주 600금으로 불사가 이루어졌다

목수가 30명이고 인근 11개 사찰에서 스님 380명이 참여하였으며, 대부분의 전각을 중창하고 명부전과 종각을 신축한 것으로 보인다. 중창불사 대공덕주 경주부윤 김광묵의 공덕을 기리는 목비가 있음.

1794년

개간함월산기림사사적(改刊含月山祇林寺事蹟)을 이관(理寬) 주지스님이 목판본으로 제작하다.

1799년

약사전 남쪽에 있던 명부전을 현재 위치로 이전하고 단청하다「영좌경주도호부동령함월산기림사명부전단호기」

1817 ~

1818년

초의선사가 기림사 산에서 나는 옥돌로 천불을 조성하여 그 이듬해에 해남 대흥사로 이운 대흥사 천불전에 봉안하다.

1862년

(철종13년) - 대화재가 발생하여 요사채 113칸이 소실되어 경주부윤 송우화의 후원과 첨지 최남곤, 전낭천, 손영모, 이상노 등의 시주에 힘입어 그해 가을에 중건되었다. 기림사중건기(1864년)」

1868년

경주 남산 용장사에 있던 김시습 사당을 고종 5년에 정부의 시책으로 헐리면서 기림사로 이전되었다.

1899∼

1900년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다. 불전5채, 향실3곳, 산령각, 진남루, 설현당, 화정료 등을 비롯하여 낭무, 주방에 이르기까지 모든 건물을 보수하였다.「기림사 중수기(1900년)」

1910∼

1945년

(일제시대) - 31본산의 하나로 지정되어 산내암자 2곳, 말사 14곳을 통괄하였다. 말사로는 보경사, 오어사, 천곡사, 거동사, 서운암(영일군), 청련사(영덕군),

석굴암, 보덕암, 해봉사, 고석암, 불국사, 분황사, 백율사, 은을암(경주군)이었다.「조선불교통사(이능화 저)」

1978년

대적광전 제 7차 중수

1979년

관음전, 사천왕문, 삼성각이 무착 주지스님의 노력으로 신축되었다.

1986년

9월에 비로자나불 복장유물이 문화재 절도범에 의해 도난되었다가 되찾았으며 보물 959호로 지어되어 유물관에 전시되었다.

1987년

종각이 능혜 스님에 의해 신축 되었다.

1990년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삼천불전(108평, 불상은 瓷器佛)이 능혜 스님과 법일 스님의 노력으로 신축되었다.

1996년

매월당 사당이 무너질 염려가 있어 헐고 경주시에서 시비 1억을 들여 신축하였다.

1997년

대적광전이 기둥이 뒤틀려 기울어지는 현상이 발생하여 정부공사로 약7억을 들여 전면 해체수리와 실축설계가 이루어졌다.「기림사 대적광전 해체 실측 조사 보고서(경주시)」

2001년

화정당 전면 해체수리와 반지하 콘크리트 건물인 공양간과 그 위에 백운당 요사채 신축을 주지 종광스님의 노력으로 정부 보조와 사중 공사비 포함 약 10억을 들여 완공하였다